5·18 역사 공간 활성화를 위한 대만/오키나와 방문 조사
- 수용소 원형보존 시설 징메이/뤼다오 국가인권박물관
- 백색테러 시기 처형장 터, 시립 공동묘지
- 옛 시설 문화공간 활용 및 반전 평화 기념시설 등 방문
5·18기념재단(이사장 원순석)은 지난 7월 10일부터 17일까지 ‘5·18 역사 공간 활성화’를 위해 대만 타이베이/뤼다오와 오키나와의 사례를 방문 조사했다. 원순석 이사장을 비롯한 출장팀은 현지 공간을 시찰하고 유관 기관을 방문하여 면담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대만에서는 뤼다오 국립인권박물관, 타이베이 징메이 국립인권박물관, 마장동 처형장 터, 육장리 시립 공동묘지, 2.28국가기념관, 2.28기념공원, 화산1914창의산업단지, 당대문화실험장, 중정기념당, 충렬사를 방문했고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자료관, 히메유리 기념관/자료관, 사키마 미술관, 슈리성을 방문했다. 이 중 뤼다오/징메이 국가인권박물관과 2.28국가기념관, 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 히메유리 자료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원형 공간 활성화를 위한 면담을 진행했다.
대만과 오키나와는 국가폭력 및 전쟁 관련 현장을 보존하고 기념시설로 운영하며 다양한 콘텐츠로 관람객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문지로 선정하였다. 대만은 1947년 국민당 정부에 반대하는 비무장 시민 약 28,000여 명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2.28사건을 겪었고, 백색테러 시기라고 일컫는 1949~1987년까지의 계엄이 선포된 국민당 독재시기를 겪은 바 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격전했던 전투에서 오키나와 민간인이 다수 희생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여러 장소는 그 특성에 따라 ①원형을 보존하되 내부를 일부 개조한 공간 ②원형을 보존하고 근처에 기념비를 설치한 공간 ③기념시설이 위치한 공간 ④공간의 역사를 일부 기록하되 완전히 문화상업시설로 바뀐 공간 ⑤옛 시설을 복원 중인 공간 ⑥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를 기념하는 공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뤼다오와 징메이 국립인권박물관은 백색테러 시기 감옥, 군사재판소 등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수감자들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생활사 박물 등을 전시했다. 감옥 내부에는 장소별로 그 당시 수감자들의 생활 사진을 전시하고 수감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는지 알 수 있는 재현물, 미니어처, 밀랍 인형, 증언 등이 전시되었다.
마장동 처형장 터는 현재 마장동기념공원 내 작은 비석과 기념 언덕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해당 장소는 시내 옆 공원으로 조성되어 산책을 하는 시민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육장리 시립묘지는 백색테러 희생자 뿐만 아니라 공동묘지로 이용 중이다. 많은 묘구 중 백색테러 희생자의 집단 묘역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체로 희생자들의 무덤의 봉분은 조성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비석은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표지석으로 남아있었다.
2.28국가기념관은 타이베이 시 중심부의 2.28기념공원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2.28국가기념관은 수난자(희생자)의 기록을 적극 연구하고, 수난자들이 배상/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2.28국가기념관은 오는 2027년 2.28 80주년을 맞이하여 내년부터 해외 위주로 2.28을 알리는 전시를 추진할 계획이며, 광주에도 최근 방문하여 우리 재단과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화산1914창의산업단지와 당대문화실험장은 각각 양조장과 감옥을 개조한 문화상업시설이다. 현재 화산1914창의산업단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문화상업시설로 쇼핑몰, 먹거리 시설, 소품샵, 팝업 스토어, 전시 등을 운영 중이며 오래된 공간을 활성화 할 때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당대문화실험장은 감옥 일부를 개조하여 작가 레지던시, 사운드 랩 등 대만 현대미술을 창작하는 예술가를 지원하고 전시하는 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중정기념당은 장개석 사후 기념시설로 현재는 두 방향의 상설전시실을 운영 중이다. 장개석 관련 박물 전시와 대만의 백색테러 시기에서의 언론 자유를 다룬 전시가 그것이다. 후자의 전시에서는 다양한 언어 가이드와 도록으로 대만 백색테러 시기에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만날 수 있다. 중정기념당은 대표적인 독재자 기념시설이지만 그 시설을 허물지 않고 원형보존함으로써 오히려 국가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독재를 경계할 수 있는 전시를 만나볼 수 있는 기념공간이었다. 충렬사는 대만의 항일전쟁 희생자 혹은 중화민국 정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위한 위령 시설이다. 군인과 일반 시민으로 구분하여 추모 공간을 조성해 놓았고, 회랑에는 중일전쟁 당시의 상황을 그림을 통해 전시하고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을 중국어와 영어와 함께 일본어로 병기하였다. 매일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고 교대식을 보기 위해 많은 대만의 시민들이 충렬사를 찾았다.
오키나와는 반전 시설인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히메유리 자료관, 사키마 미술관을 방문하였고, 최근 소실되어 복원 중인 역사 공간인 슈리성을 방문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 위령탑도 건립되어 있으며, 전국 각지 출신의 희생자를 기릴 수 있도록 각 지역별로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기념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소재한 전시 시설에는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도록 전쟁 당시 피난굴을 재현한 모형과 증언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전시실 1층에는 어린이 전시실을 따로 두어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래 세대에게 평화의 가치를 전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깊었다. 또한 아이를 기르는 가족단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 독특했다.
히메유리 자료관은 전쟁에 동원되었던 청소년 희생자 기념시설이다. 자료관은 그 당시 희생자들이 대피했던 굴 바로 옆에 소재하고 있으며 굴 앞에는 헌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히메유리 자료관은 운영비 대부분을 관람료로 충당하고 있다. 전쟁에 동원된 희생자를 단순히 피해자로 볼 것인지, 전쟁에 기여한 영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히메유리 기념관은 관람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조사해 주기적으로 전시를 리모델링 하고 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과 히메유리 자료관 건립과 구성에는 희생자, 유가족의 의견과 건축 전문가, 역사 연구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고 한다.
사키마 미술관은 사키마 관장이 평생에 걸쳐 모은 반전, 평화 관련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사키마 미술관에는 오키나와 전쟁과 관련된 작품들 외에 5·18을 다룬 홍성담 작가의 판화도 만나볼 수 있다.
슈리성은 2010년대 방화로 인해 소실된 오키나와의 전통 건축이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이기도 한 이 건물은 현재 복원 중인데, 현장을 찾은 관람객은 복원 현장을 유리 너머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해설을 통해 현재 건물 내부에서 어떤 장인이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지, 현장 복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다.
대만과 오키나와 기념시설 방문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대만의 경우 특히 구금, 고문, 재판 장소를 허물지 않고 원형 보존하여 건물 현장 자체를 콘텐츠화하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의 현장 방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특히 사건을 기념하는 기관 및 단체가 역사시설에 소재하고 있음으로써 적극적인 관람객 유도와 현장 중심의 프로그램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난시설을 밀랍 인형 등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전시물은 일부 관람객에게 위화감이 들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해듣기도 했다.
2.28기념관은 피해자를 대리하여 국가에 보상 신청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국가의 기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거나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 피해 당사나 유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고 있다. 5·18기념재단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 이후 미진한 부분을 적극 연구하여 5·18 피해자와 유족을 선양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한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관은 전국의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도록 오키나와 현장에 전국 단위의 지역별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전국 단위의 방문객 관람을 유도하였다.
대만과 오키나와의 기념시설에서는 공통적으로 희생자의 증언을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열람할 수 있게 전시했다. 희생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항목별 증언검색 시스템 구축을 통해 보다 피해자의 삶에 이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이 인상깊었다. 특히 히메유리 자료관은 증언 구술문을 다국어로 서비스하고, 책장/의자/받침대 등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5·18 증언은 수집된 바는 많지만, 증언 기록을 적극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전시는 많지 않다. 이 중에서도 5·18 당시 구금당하고 고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 많이 수집되지 않았다. 향후 이들의 수감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이번 출장의 과제로 남았다.
- 문의 : 오월길문화사업단 노소윤(062-360-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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